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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최상의 맛을 위한 숙성
최상의 맛을 위한 숙성 2017-06-05

[중앙선데이] | 53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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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이야기

 

몇 년 전 옥() 광산 와인숙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몸에 좋다는 옥이 와인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같은 구성으로 와인 두 박스를 만들어 춘천 근교에 있는 유명 옥 광산과 일반 와인 셀러에 각각 저장했다. 3개월 뒤 비교 시음한 결과, 옥 광산에 저장했던 와인의 맛이 더 부드러웠다. 특히 레드 와인의 떫은 타닌 맛이 부드러워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정말 옥의 역할인지는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특히 강한 레드 와인일수록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좋은 와인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은 수 천 년간 끊임없이 진화했다. 새로운 숙성 방법에 계속 도전했다. 암포라(와인을 숙성 및 운반하던 토기 항아리)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인들의 방법은 기원전 1세기께 로마시대에 이르러 나무 통을 사용하는 숙성 방법으로 이어졌다. 이는 현대의 오크 숙성 형태로 진화했다
.

초창기에는 오크통의 와인 숙성 효과를 잘 몰랐기에 그냥 와인 운반 수단으로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오랜 항해 동안 오크통 속에 있던 와인이 숙성돼 맛있는 와인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칼 마르크스가 사랑했던 보르도의 샤또 꼬스 데스뚜르넬(Ch. Cos D’Estournel)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 와인은 오크통에 담아 인도에 수출을 했는데, 긴 항해 기간 동안 잘 숙성되어 인도에 도착할 때쯤 훌륭한 맛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와의 무역에서 큰 성공을 했다
.
그렇게 유럽에서 오크통의 숙성은 최상의 방법이 되었지만, 통에서 몇 년씩 오래 숙성할 수는 없었다. 이때 유리병이 등장했다. 코르크 마개는 외부와의 미세한 산소 결합을 통해 숙성 또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와인 병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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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와인 병은 얼마 동안 숙성이 가능할까? 대부분 와인보다 인간이 먼저 죽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와인의 끝을 보기는 힘들다. 100년 이상 된 와인도 음용이 가능한 예(1995년 이탈리아의 몬탈치노에서 비온디 산티 1888년산 시음)가 있지만, 일부 좋은 와인에 국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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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고 외 지역에서 100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연한 기회에 밝혀졌다. 1872 2월 한 거대한 무역 선이 보르네오와 싱가포르 사이 바다를 통과하다 태풍을 만나 침몰했다. 이 배에는 전년 11월 보르도에서 실은 많은 양의 와인이 실려 있었다. 120년이 지난 1992, 이 침몰선에서 보르도 생줄리앙 지역의 샤또 그뤼오 라로즈(Ch. Gruyaud-Larose)를 인양했다. 즉시 성으로 옮겨 전문가들이 시음한 결과 맛과 향이 살아 있었다. 와인은 엷은 오렌지 색을 띠었고 가죽·담배·낙엽 등의 고상한 향이 가득했다. 차갑고 압력이 높은 깊은 바닷속에 외부 변화 없이 고요하게 묻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생각했다. 이 점에 착안해 미국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바닷속 수심 60m 아래에서 저장·숙성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일부는 이미 일반인들에게 판매를 시작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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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에 대한 호기심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암포라의 재등장이다. 땅에서 태어난 포도 본연의 가장 자연스런 맛을 얻기 위함이다.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기계 대신 동물로 포도밭을 갈며, 그 땅의 흙으로 암포라를 만들어 와인을 숙성한다. 아직 일부 양조장에서 진행 중인 일이지만, 이런 와인이 미각적으로 어떻게 진화하고 얼마나 긴 숙성력을 가질 것인가는 지켜볼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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