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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세월의 반전, Chateau Talbot 2004
세월의 반전, Chateau Talbot 2004 2018-03-23

아주 오랜만에 사또 딸보(Ch. Talbot)를 오픈했다. 빈티지는 2004, 그렇게 훌륭한 해는 아니지만 보르도 와인의 특성을 잘 표현해주는 소위 ‘클래식’한 빈티지다. 딸보는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와인 시장에서 유명세(쉬운 발음도 한 몫했다)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프랑스 보르도 지역 와인이다. 그러나 와인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수많은 와인들이 수입되다 보니 딸보의 존재는 어느 순간 그저 그런 흔한 와인으로 전락했다. 정말 품질도 그렇게 추락했을까?


샤또 딸보의 역사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딸보란 이름은 꼬네따블 딸보(Connétable Talbot, 딸보 총사령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제로 영국에 있는 슈루즈베리의 공작이었다. 영국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유명해져서 기엔(Guyenne: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영국인 무관으로 근무했었다. 그러나 1453년 까스티옹 전투에서 패하여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꼬네따블 딸보’란 이름은 샤또 딸보에서 만드는 2차 와인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샤또는 1918년, 수십 년 동안 주인으로 있던 마끼 도스(Marquis D’Aux)로부터 꼬르디에(Cordier) 가문이 구입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딸보는 메독 지방의 중심인 생 줄리앙 지역에서 규모가 큰 110헥타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밭이 넓으면 그만큼 관리가 어려워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딸보는 꼬르디에 가문이 인수하면서 포도밭에서 가장 중요한 배수 문제를 해결해 포도 품질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양은 생 줄리앙 지역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둥근 자갈과 모래, 점토 석회질들이 섞여있다. 다만 위치상으로 두 강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에 있어 강이 몰고 온 토양들이 좀 더 많이 쌓여 아주 비옥한 환경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포도재배에 가장 이상적인 토양구조를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총 105헥타에서 적 포도(카베르네 소비뇽 66%, 메를로 30%, 쁘띠 베르도 4%)를 생산하며 5헥타에서는 특이하게도 화이트 와인용으로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재배한다. 여기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은 ‘까이유 블랑 Cailleu Blanc’으로 초기 성주였던 장 꼬르디에가 처음 생산했다. 주변 샤또들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 전이라 희소성 때문에 와인 수집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샤또 딸보는 지나침이 없는 와인이다. 강건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고 있으며 섬세하면서 오랫동안 숙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2004년  딸보에는 사실 큰 기대가 없었다. 보르도에서 2005년 초 시음했던 2004년 빈티지엔 별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맛은 부드럽고 균형은 잡혀 있었지만 입감이 중간단계로 빈티지의 특별한 성격이 드러나지 않았었다. 때문에 사실 오랫동안 숙성하기엔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반전이 있었다. 처음 오픈했을 때 보르도 특유의 기분 좋은 스파이시한 향이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조금씩 풀어지고 계속 진전되었는데 산미와 부드러운 타닌이 끝까지 맛의 균형을 잡고 있었다. 물론 개인 셀라에서 2년 이상 안정된 덕도 있었겠지만 감안해도 놀라웠다.


사람들은 상표나 물건에 너무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그것이 갖고 있던 본래의 가치에 대해 무심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2004년 딸보를 이틀에 걸쳐 음미해보면서 필자 자신도 많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이 주는 변화 앞에서 늘 겸손해야한다는 사실을 딸보 총사령관은 말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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