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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Vin Jaune의 추억
Vin Jaune의 추억 2019-02-15




벌써 10년 정도 친구로 지내는 프랑스 요리 장인 Eric Trochon(MOF)이 그의 부인과 또 다른 친구 에마뉘엘과 멀리 양양까지 왔을 때 아껴두었던 뱅죤 한 병을 오픈했다. 2015년부터 더 이상 자신의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는 “아르부아 와인의 교황”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자끄 쀼페네(Jacque PUFFENEY)가  만든 2007년산 뱅죤이었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을 발전시킨 개척자가 있기 마련인데 쀼페네씨가 쥐라 지역에선 그런 역할을 한분이다. 사실 이 지역의 AOC는 1936년 지정되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모든 것들이 새롭게 재건되어야 할 시점에서 쀼페네씨는 아버지가 일하는 작은 포도밭에서 1962년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빈티지는 1964년이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포도들(Chardonnay, Poulsard, Pinot Noir, Trousseau)로 와인을 만들었고 비록 소량이지만 그 품질이 인정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지역 토양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시키는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 되었던 것. 그가 만든 마지막 빈티지는 2014년으로 2021년이 되어야 출시할 수 있다고 한다.  


쀼페네씨는 쥐라 지역의 대표 마을 아르부아(Arbois)에서 사바냉 품종으로 뱅죤을 만들어 쀼페네 없는 사바냉을 생각할 수 없도록 일체가 되었고 인정받고 있다. 뱅죤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파스퇴르 연구 덕분으로 탄생된 와인이라 볼 수 있다. 이 와인은 쥐라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독특한 와인으로 스페인의 피노 셰리와 비슷하지만 좀 더 부드러우면서 과일의 맛과 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한 오크통에서 6년3개월 이상 숙성을 시키는데 이 기간 동안 오크 통 윗부분에 효모 층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공기와 차단막(프랑스에선 Voile: 속이 비치는 얇은 막) 역할을 하면서 급속하게 산화되는 것을 방지한다. 요즘 내츄럴 와인에서도 이렇게 고급지게(?) 산화된 맛을 지나가듯 느낄 수 있다. 뱅죤은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바냉만의 독특한 맛이 이 지역의 토양과 만나 유니크한 와인의 향과 색을 더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20여 년 전 아르부아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재미있는 경험을 했었다. 마침 이 마을에서 태어난 시인, 기 토마스를 축하하는 축제 자리였는데 만찬은 밤늦게까지 진행되었다. 내가 초대된 자리가 시인과 그의 친구 화가, 피에르 뒥이 함께 앉은 원형 테이블이었다. 각 손님들 앞에 놓인 여러 개의 잔에는 색이 다양한 화이트와 레드 와인들이 있었는데 그 맛이 하나같이 독특했었다. 처음에 이런 와인은 한국 시장에선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씩 마시다보니 그들만의  맛에 빠져들게 되었고 곧 익숙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말 묘한 경험이었다. 그때 쯤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무대 중간에 시소가 마련되고 그날의 주인공, 시인이 불려 나갔다. 사회자는 노 시인을 시소에 앉히고 반대편엔 쥐라 와인 박스를 올려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소가 평행을 이루었을 때 올라있는 모든 와인을 시인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시인 또한 얼굴 가득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다시 자리에 돌아 왔을 때 시인의 친구, 화가가 내게 선물 하나를 주었다. 시인은 시를, 화가는 그림을 그려 만든 책, Regards d’artistes를 주며 두 분이 모두 사인해 주었다. 이 책은 아직도 내 서재에 꽂혀 있다.
그날 나는 춤도 못 추는 이방인이었지만 쥐라 와인 덕분에 약간의 취기로 얼굴에 땀이 흥건하도록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나 더 놀라왔던 것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도 특별한 숙취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 사실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 마지막 날 알 수 있었다. 방문 했던 와이너리 오너가 머무는 동안 마시라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쥐라 와인 한 박스를 숙소로 보내주었는데 그 중에 뱅죤이 한 병 있었다. 나는 마지막 날 아르부아 여행을 자축하며 혼자 남은 뱅죤(500ml) 한 병을 모두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그 다음날 몸이 이상하리만큼 가볍게 느껴졌다. 그 때 나는 뱅죤이 내 몸에 아주 잘 맞는 와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에릭일행이 양양으로 온 저녁 에릭이 냉장고를 털어 음식을 준비했고 우리는 스파클링과 레드 와인 두병을 즐겁게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릭이 내민 것은 꽁떼(Conte)라는 쥐라 지역의 특산 치즈였는데 이것이 뱅죤과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에릭이 요구했다. 뱅죤을 오픈하라고... 사실 그때까지 뱅죤까지 오픈할 생각은 없었는데 꽁떼 치즈를 보자 마음이 동했고 에릭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요구한 와인이라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쀼페네의 뱅죤을 오픈 했다. 환호가 돌아온 건 당연한 것. 더군다나 프랑스인 에마뉘엘은 이 와인조차 알지 못해 에릭은 마시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설명해 주었다.  에릭은 정말 이 와인을 좋아 했다. 사실 2007년산이라 뱅 죤 치고는 좀 어린 것이라 내심 걱정을 했는데 그래서 처음에 잔에 조금만 따라 주었더니 남들보다 적게 따랐다고 내게 핀잔(?)까지 주었다. 나는 에릭을 안심시키기 위해 오늘 저녁 이 와인 한 병을 모두 마시자고 제안했다. 결국 우리는 전작으로 와인 3병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뱅죤 한병을 가볍게 다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에릭 왈, 담에 꼭 뱅죤 한 병 사 올께...나는 기왕이면 샤또(Chateau Chalon)으로 가져 오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물론 그 다음날 새벽 6시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반경 거실 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해돋이를 볼 때에도 숙취는 없었다. 뱅죤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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