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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자전거의 속도로 와인과 인생을 느낀다
자전거의 속도로 와인과 인생을 느낀다 2019-08-21





요즘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스쳐지나가듯 떠오른다. 첫 배움에서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오늘까지.... 
내가 자전거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때였다. 오래전이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학교 운동장에서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배웠기 때문인데 그 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전학 간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분명 집에 자전거가 없었는데... 아마도 동네 형이나 아저씨에게 빌렸던 것 같다. 그때는 자전거가 몸집에 비해 너무 크고 높아(지금 생각에 쌀을 싣고 다니던 검은 짐 자전거였던 것 같다) 오른쪽 다리 하나를 안장 밑 삼각대 옆으로 넣어 페달을 굴렸던 기억이 있다. 많이 넘어졌지만 그 공포를 처음으로 극복하면서 자전거를 정복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얻었다.
중학교 시절엔 누님이 선물 받은 새 자전거가 집에 있었는데 학교에 타고 다니지 말라던 충고를 뒤로하고 끌고 갔다가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경찰서에도 신고하고 밤늦게까지 찾아 다녔지만 결국 못 찾았고 누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대학 시절까지 한 번도 자전거를 탄 기억이 없다. 탈만한 공간도, 자전거도 없었으니까...   
다시 자전거를 접하게 된 것은 노르망디 캉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방을 구하기 힘들어  학교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되는 외곽에 살게 되었는데 식사를 집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 식당이나 외부에서 빵이나 우유 등을 사와 때워야 했었다. 평일은 그래도 버스가 20분에 한 대 정도는 다녀 시내 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다니는 버스를 타고 단지 식당에 가기위해 한 시간을 가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인 노부부의 배려로 낡은 자전거 한 대를 빌려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등교와 하교 주말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특히 주말엔 학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마을 시내까지 이어진 수로를 따라 자전거로 달리면 노르망디 해변까지 한 시간 정도면 도달 할 수 있었다. 수로를 따라 달리던 시간은 정말 자유 그 자체였다. 가끔 변덕스러운 날씨 덕분에 온 몸으로 비를 맞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었다. 노르망디에 도착하면 해변을 따라 자전거 산책을 할 수 있었고 해변엔 중생대시대 만들어진 조개 화석들이 많이 있어 지질학을 공부하던 나로서는 그것들을 수집하는 것이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픈 적도 많았지만 해변 카페에 앉아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 마실 때면 또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행복이 밀려오는 것 같다. 분명 지금은 훨씬 좋은 환경에서 더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와인까지 곁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 때의 하얀 미래에 비하면 너무 색이 많이 칠해져 꿈틀거리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만하는 것일 지도.....

귀국 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자전거를 접할 기회는 없었다. 다만 출장으로 파리에 간 경우 하루 이틀 휴가를 내서 퐁텐블루에서 밀레 같은 자연주의 인상파 화가들이 함께 작업하던 바르비종파들의 본거지, 바르비종까지 자전거로 달린 적이 두 번 정도 있다. 숲을 지나 밀레의 유명그림, “만종”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를 자전거로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보다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접한 것은 와인 여행을 시작하면서다. 낮은 언덕으로 형성된 보르도의 지형 덕분에 자전거 타기엔 더 없이 좋았고 찻길이 아닌 포도밭 사이 작은 길들을 자전거로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포도의 풍미를 가까이서 직접 느꼈다. 또한 일몰에 물드는 아름다운 포도밭을 자전거 속도로 감상하는 행운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가까운 샤또들은 자전거로 방문하기도 했고 시음을 마치고 약간 들뜬 기분으로 포도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호텔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몇몇 샤또 오너들은 사석에서 지금도 그때 내가 자전거로 자신의 샤또를 방문 했던 것을 기억하며 추억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벌써 20년 이상이 흘러 개중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여럿 있다. 가는 세월이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순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자전거로 와인 지역을 돌아다니다 얻은 많은 추억들이 있다. 마꽁에서는 포도밭 한 중간에서 펑크가 나 수리 점을 찾아야 했는데 결국 농기구 수리공에게 부탁해서 펑크 난 곳을 때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선물 받은 와인을 배낭에 메고 호텔로 돌아오다 무게 때문에 다시 펑크가나 몇 백 미터 마다 한 번씩 바람을 넣어가며 달린 결과 밤 늦게야 호텔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와인들을 모두 오픈해 호텔 일층 레스토랑에서 지역주민들과 신나게 와인을 마시며 긴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프랑스 남부의 오랑쥬에서 샤또네프 듀 빠쁘까지 자전거로 산책을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을 잘못 들어 몇 시간을 헤멘적도 있다. 목이 마르면 와이너리에 들려 물을 마시고 와인도 한잔 주면 와인도 마시며 그렇게 여유롭게 돌아다녔고 매번 사진을 찍어 나중에 책을 내면서 그 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두 권의 프랑스 와인 기행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왔던 것인지.... 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그렇게 시키고 있었다.

한두 달 전부터 나는 양양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기존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면 요즘 양양에서는 그저 자연을 즐기며 약간의 운동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구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조그만 자전거를 꺼내 해안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린다. 꼬마 자전거라 큰 속도감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달리다보면 다른 항구들이 나오고 항구마다 어김없이 서있는 붉은 등대와 흰 등대를 만나게 된다. 요즘은 해변 길을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드는 개천 옆의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계곡물이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넓은 하구를 만들었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계곡의 돌들은 세월을 견뎌낸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달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자전거길 은 끝이 나있다. 그러면 물가에 앉아 준비해간 생수 한 모금 마시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항구로 돌아온다. 대충 왕복 1시간 반~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나는 이런 코스를 몇 개 개발해 놓고 그날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장소를 옮기며 자전거를 탄다.
달리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는 것으로 즐겁다. 파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잔잔하면 그런대로 나는 스쳐지나간다. 가끔 돌이 많은 해변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감탄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나는 언제까지 자전거를 타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달리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일 수도 있다. 때문에 또 다른 매력을 삶에서 찾을 때까진 이렇게 달리고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겨울이 올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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