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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양양 여름의 끝자락, 로제(Rose)와 더불어....
양양 여름의 끝자락, 로제(Rose)와 더불어.... 2019-08-29




해변은 이미 사람들의 그림자를 쉽게 셀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해 졌다. 그 뜨거웠던 태양도 낮 동안 잠시 머물지만 바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며칠 전 올 여름 처음으로 로제 와인을 오픈했다. 보통은 한 여름에 로제를 자주 마시는데 올해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즐기게 되었다. 지인이 처음 수입한 와인이라며 다른 와인들과 함께 양양으로 보내준 덕분이었다. 엷은 연어 빛을 띠고 있는 로제를 잔에 따르자 싱그러움이 퍼졌다.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로제의 향과 색에 매료 되었다. 잘 구은 연어와 함께 한잔 들이키는 순간 올 여름을 모두 마셔버리는 것 같았다. 차갑게 칠링한 덕분에 잔에는 안개가 내려앉은 것처럼 뿌연 막이 생기고 그 너머로 자극적이진 않지만 매혹적인 붉은 색이 보인다.

나는 여름 시즌에 마시는 로제 와인에서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한적한 숲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테라스에서 빛나는 태양과 함께 했던 순간들..... 신선한 샐러드와 가벼운 생선, 먹음직스럽게 구은 닭 요리들과 함께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조각들을 떠올릴 때면 늘 여유로움과 싱그러움이 함께 겹치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얼굴 가득 품게 된다. 사실 로제는 모든 음식과 격이 없이 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특히 여름철 화이트나 레드를 대신해 한잔의 로제 와인으로 두 와인의 즐거움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보는 즐거움, 향을 느끼는 즐거움 그리고 맛보는 즐거움을 모두 갖고 있는 와인이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로제 와인은 점점 멀어지고 묵직한 레드 와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로제 와인이 우리나라에 소개 되었을 때 첫 반응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특히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색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국내에 소개된 로제 와인의 품질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로제 와인은 값싼 와인의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고 결국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아마 당시만 해도 와인을 마시는 문화가 경제적 여유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인 자체의 맛 보다는 다른 이유들이 더 작용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 들어 로제는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다. 와인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고 작은 모임들이 많이 생기면서 모든 음식에 적당하게 잘 어울리는 로제 한 병 들고 가는 것이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물론 가격 면에서 많은 부담을 주지 않으니 실리를 추구하는 젊은 사람들의 호응은 높아가고 있다. 

내가 아는 로제 와인들 중 하나가 뱅 드 사블(Vin de Sable, 모래에서 만들어 진 와인)이다. 포도밭에 모래가 많아 불린 이름인데 로제 와인의 색이 다른 것보다 더 옅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맛의 풍미는 더 조밀하며 섬세한 맛이 일품이다. 프랑스에서 로제 와인 지역으로 잘 알려진 곳이 남불의 따벨(Tabel)과 루아르 지역의 앙주(Anjou)인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로제들은 품질이 우수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즐겨 마시는 대표적인 로제는 뱅 드 프로방스(Vin de Provence), 프로방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로제인데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한 맛이 살아 있어 모두 부담 없이 즐기는 와인이다. 로제 와인의 색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색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레드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껍질의 색이 덜 빠져 나왔을 때 와인만을 축출하면 레드 와인보다 색이 엷은 로제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생산자는 색의 변화를 체크 하면서 와인을 분리할 타이밍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의 로제 와인들은 붉은 감색이나 더 진한 색의 로제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붉은 포도를 직접 껍질째 압착하는 방법을 쓰면 압착 정도로 색을 조절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더 옅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연어색이나 살짝 분홍빛이 감도는 정도의 로제 와인을 선보일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쓰던 화이트 보다는 무겁고 레드보다는 가벼운 중간 형태의 와인이 만들어 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로제도 만드는 사람과 포도의 종류,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성을 다한 로제는 화이트나 레드보다 더 좋은 와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품질이야 다양하게 만든 다해도 역시 한여름 차갑게 칠링해서 마시는 로제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제를 “여름 바캉스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차가운 로제여야만 산듯하고 섬세한 특유의 맛을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양양에서 처음 마시는 로제 와인을 위해 신선한 연어를 구입해 왔다. 사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태평양으로 갔던 연어들이 남대천으로 다시 회귀하기 때문에 정말 신선하고 탱탱한 식감을 갖고 있는 연어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지금은 수입 연어로 만족하고 대신 신선한 횟감으로 파는 두꺼운 연어를 수분이 최대한 살아 있게 와인을 첨가해 요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냉장고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로제 와인을 오픈해 함께 했다. 조리한 연어와 거의 같은 색을 띄고 있는 로제는 프랑스 남부 론(Rhone), 리락(Lirac) 지역에서 만든 것이다. 모두 네 개 품종(생소,그르나슈,피끄뿔 누아,시라)을 25%씩 섞어 만들었다.  약간의 질감이 느껴지는 와인으로 색감과 균형감이 좋았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 아페리티프로 마시면 위를 활성화 하는데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어와의 매칭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부에 수분이 남아 있는 연어의 질감을 같은 강도의 풍미로 감싸 서로의 맛을 상승시키고 있다는...... 결국 이날 오픈한 로제 한 병을 모두 비우고 식사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양양에서의 여름은 이렇게 로제 한 병과 더불어 다시 과거 속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언제 다시 로제 와인을 떠올릴 때면 분명 이 지나간 시간도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잊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기억들은 추억으로 간직해 가끔 꺼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양양 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신 로제와인, 빛나던 태양과 더불어 2019년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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