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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세 가지 와인, 세 가지 맛 그리고.....
세 가지 와인, 세 가지 맛 그리고..... 2019-09-05




8월의 마지막 주는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4월, 양양에 다녀갔던 지인이 내게 다시 방문한다고 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미루다가 내가 서울에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우리는 자주 가는 와인 숍에서 만나 오랜만에 좋은 와인 3병을 골랐다.
Vosne-Romanee, les suchots,2011 Bouchard Pere & Fils
Barbaresco,Vietti 2015
Castello di Montepo, 2010
모두 품종과 년도가 달라 비교하면서 마시기에 좋을 것 같았다. 식당은 우아함 보다는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버드나무집을 선택했다. 물론 이 식당의 지배인을 지인이 잘 알고 있어 좋은 고기를 부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 개 와인 중 첫 번째로 간택(?)된 것은 본 로마네. 보통 부드러운 맛과 과일 맛이 있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 선택했다. 일등급이라 열리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이미 8년 정도 지난 와인이라 마시는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입안에서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닌 세월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에 약간의 엷은 막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느낌. 하지만 향은 좋았다. 양념을 살짝 가미한 고기와 먹으니 와인 맛이 묻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에도 이 와인을 몇 번 마셔봤기 때문에 일등급이 아닌 본 로마네 2015년을 사려 했지만 지인이 오랜만에 촌(?)에서 올라온 내게 좋은 와인을 맛보이겠다는 일념으로 가격이 2배정도 하는 일등급을 골랐던 것. 역시 자제 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와인으로 바바레스코를 오픈하자 이 와인은 보디감과 맛과 신선함이 살아 있어 고기의 맛을 잘 흡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맛도 잘 표현해 주었다. 지인도 아주 만족했다. 물론 내 개인 적으론 이 와인 역시 100% 자신의 맛과 향을 올리지는 못했다. 단지 영한 것을 감안하면 이 시기에 주는 생생한 맛들이 고기와 잘 어울렸다는 것. 아마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이 와인만 홀로 마신 다해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오픈한 몬테뽀는 이탈리아 브루넬로의 전설 비온디 산티의 오너, 야코포가 만든 와인이다. 이 와인은 자신을 과시하는 맛은 없었지만 2010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잘 익은 그리고 그 지역의 개성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 이 성을 방문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야코포 자신이 직접 군용 트럭을 몰고 와이너리를 안내했었다. 당시엔 포도나무들이 6~7년 밖에 되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좀 더 깊은 맛의 와인을 만들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2010년은 옅은 토양 향이 바닥 전면에 깔리면서 그 위로 섬세하고 숙성된 맛들이 잔잔하게 펼쳐진 와인이었다. 고기 보다는 강하지 않은 이탈리아 치즈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앞의 두 와인과 충분하게 고기를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지막 와인은 와인 그 자체를 즐기면서 마무리를 했다.

지인과 나는 자리를 옮겨 지인이 정신적으로 힘든 시절 위안이 되었던 분당의 한 작은 맥주 집으로 갔다. 분당 도서관 앞에 자리 잡은 이 팝은 한적했고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흑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 이 팝의 사장님도 함께 자리했는데 인상이 좋은 같은 연배의 중년 남성이었다. 지인은 잠시 옛날 생각에 잠기기도하고 사장님과의 추억도 되새기며 오랜만에  정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것 같았다. 거리가 조용하니 우리 목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다가오는 추석엔 무엇을 할 것인지 묻자 지인은 동유럽으로 여행을 갈 거라 했다. 서울에서 특히 할 일이 없고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결정했다는데 어딘가 모르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동안의 도피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행 잘하고 9월 말경에 양양에서 송이나 먹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가끔 지인을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돈이 충분하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열심히 자신의 할 일이 있다면? 아님 가족이 있다면?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눈과 균형 있게 생각하는 사고가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모양 꼴이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 모두는 무엇으로부터 일그러진 사고와 깨진 균형 때문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과연 행복한가? 대답은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다. 다만 가끔 기분 좋은 일들이 생길 때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가 있다. 만약 매일 이런 느낌을 가진다면 심장이 터질지도..... 자신의 무게만큼 살수 있다면 죽음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오랜만에 좋은 와인 세 병을 마시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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