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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가을 송이 그리고 Monbousquet 2009
가을 송이 그리고 Monbousquet 2009 2019-10-01





9월, 양양 시장엔 이 시기에만 얻을 수 있는 야생 버섯들이 많이 나온다. 싸리버섯, 송이버섯, 능이버섯, 노루 궁둥이 그리고 이름이 조금 생소한 검은 색의 버섯 등등... 그중 으뜸은 양양 송이다. 


며칠 전 양양 송이 축제가 끝났다. 3일 동안 남대천 둔치와 양양 시장에서 열렸는데 정말 양양 송이는 양이 너무 작아 찾아보기 어려웠고 국내산일 경우 대부분 내설악 지역에서 온 것이 많았다. 양양 송이는 다른 지역과 구분하기 위해 허리에 노란 띠를 두르고 있다. 경매에서 입찰 받을 때 양양 송이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올해 양양송이는 고가에 나왔다. 일반 국내산 송이에 비해 거의 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사람들은 송이가 금값이란다. 


송이는 모두 소나무 아래서 구할 수 있지만 특히 양양 지역엔 곧게 뻗은 좋은 적송들로 이루어진 숲이 많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송이는 특별히 향이 강하고 색이 건강하며 탐스럽다. 송이는 보통 5등급까지 분류되는데 굵으면서 완전히 피지 않은 것을 제 1등급으로 한다. 2~5등급은 핀 정도와 크기가 작아지면서 등급이 내려가는데 5등급일 경우 엄지손가락 크기가 된다. 비록 큰 송이라 할지라도 우산이 펼쳐지듯 머리 부분이 피어 있으면 등급이 하향되지만 사서 바로 먹을 경우 이런 송이도 맛과 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송이 철이 되면 시장엔 할머니들이 다른 야생 버섯들과 어쩌다 운 좋게 산에서 얻은 송이 하나를 들고 나와 파는 경우도 있다. 농사지은 호박이 천원에 2~3개씩 하는데 송이 작은 것 하나에 만 원 정도 받으면 할머니로써는 큰 기쁨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송이 철이 오면 양양 시장엔 활기가 돌고 풍요로움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일부 상인들만을 위한 잔치가 되는 것 같아 좀 씁쓸한 면도 있다. 이들은 장사 수환도 좋다. 송이 사는 고객이 우리는 인천까지 가야되는데 문제가 없을까요 물으면 단번에 이 정도면 하와이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간다라고 답해준다. 가격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붙여 놓은 가격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가격에서 시장 특유의 밀고 당기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조금 더 저렴하게 살수도 있다. 그러나 송이 판매에선 덤이란 것이 없다. 워낙 고가이니 작은 것 한 개 더 받아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이 곳 토박이들은 이야기한다. “예전엔 송이가 흔하디흔했었는데 그 많던 송이가 요즘은 다 어딜 간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시장에 나온 송이는 믿지 못해서 먹지 않아요. 이웃이 산에 갔다가 따오면 그 때 구해서 같이 먹지...” 모두 돈이 된다고 하니 송이에 대한 인심도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송이를 보면서 어떤 와인과 먹으면 좋을지 고민해 봤다. 송이의 쫄깃한 식감과 특히 고유의 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서로 깊게 상승효과를 불러 올 수 있는 그런 와인....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멀롯을 많이 사용한 생테밀리옹과 포므롤 와인이었고 그 다음이 산지오베제를 사용한 키안티 지역 와인과 네비올로를 사용한 피에몬테 지역 와인이었다. 하지만 송이와 어울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와인이 너무 무겁지 않아야하며 숙성이 충분히 되어 토양 향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정도까지 맛이나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포므롤이나 생테밀리옹 지역의 10년 이상 숙성된 와인이고 키안티 역시 이정도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물론 산지오베제가 갖고 있는 향 자체가 송이와 잘 어울리지만 숙성이 충분히 되지 않으면 부드러움이 없기 때문에 입안에서의 조화가 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생각하며 개인 셀라에 있던 와인들 중 하나를 선택했다. 
Chateau Monbousquet 2009, Saint Emilion Grand Cru Classe. 아주 오래 전에 이 와인을 마셔보고 오래간만에 오픈을 했는데... 내가 기억했던 와인의 맛보다 강했다. 10년 숙성되었고 셀라에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에 부드러워졌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강한 맛이 진하게 살아 있었다. 품종의 배분을 보니 멀롯 60%, 까베르네 프랑 30% 까베르네 소비뇽10%였다. 와인이 강한데 는 까베르네가 많이 섞여 있어서였고 이 와인 자체가 지닌 성향이 좀 더 오래 숙성해야 되었다는 것. 하지만 향은 아주 화려했다. 맛에선 덜 숙성되어 열리지 않은 답답함과 입안 뒤쪽에서 약간 허전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 와인과 두 가지 송이 요리와 함께 했는데 소고기 치마 살과 송이를 함께 구어 먹으며 음미해 봤고 하루가 지나서 양양 시장에서 신선한 생 연어를 구입해 송이를 살짝 볶아 곁들여서  먹었다. 치마 살과 송이에 와인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숙성된 와인을 오픈 했으면 좋았을 것을... 반면 하루가 지난 와인은 부드러워 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입안에서 충분히 조밀 감을 느끼해 해주지는 못했다. 와인과 송이, 연어가 모두 각자 개성을 갖고 있었지만 서로의 조화는 미흡했다. 결국 연어와 송이엔 보르도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오픈했지만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부르곤뉴 샤르도네나 비오니에 와인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송이로 소스를 만들어 연어와 함께 먹었다면 충분히 조화로웠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론적으로 송이와 함께할 와인으로 2009년 몽부스께는 너무 어렸고 한 5년 정도 더 기다렸다 마셨다면  지금보다 훨씬 조화로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4~5년 된 멀롯을 많이 섞은 생테밀리옹 와인을 마셨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다.

일 년에 이 계절에 맛볼 수 있는 귀한 송이라 좀 더 대접을 해주고 싶어서 신경 쓴 것이 도를 넘었다. 그래서 좋은 식재료라고 항상 좋은 와인이 최고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최고의 와인이라도 허접한 음식이 최고의 조화를 이끌어 낼 때가 있다. 적당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 가을을 맞이하면서 몽부스께와 송이가 내게 보여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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