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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아카시아 꽃 향기가 주는 기억
아카시아 꽃 향기가 주는 기억 2019-06-04

내가 살고 있는 내곡리의 5월은 이전에 살았던 서울 신촌과는 확연히 다르다. 신촌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고 작은 산이 있었지만 이곳은 향 자체가 틀리는 것 같다. 소나무 숲길을 걷기위해 한참동안 농로 길을 걸어야하는데 4월까지 못 느끼던 자연의 향기가 만발하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이 풍기는 향기는 신선하고 멀리 보이는 아카시아 꽃들이 주는 향기는 너무도 달콤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또한 4월부터 계속된 송홧가루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공기 중에 떠다니며 구수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 나는 한그루의 아카시아 나무가 이렇게 짙은 향을 뿜어낼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숲속을 걷다가 어느 순간 아카시아 향이 느껴지면 반드시 주변 어딘가 엔 아카시나무 한그루가 소나무 숲 아래 서 있곤 했다. 그들 향기는 향수보다 더 강했고 어린 시절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던 그 향보다 더 진한 것 같았다.


50년 전, 공부하기 싫어 도망 다니다 어머니가 새신을 사준다는 꼬임(?)에 빠져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막상 가보니 친구들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두려운 곳도 아니었다. 적어도 선생님의 과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전까지는.... 과제는 진흙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아무거나 만들어오기였다. 그 당시 나는 계집아이들처럼 소꿉장난을 좋아해 부엌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구들을 만들기 좋아했고 요리하는 흉내도 냈었다. 이런 취미를 살려 선택한 것이 “도마와 칼”이었다. 나는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로 제작을 해 그늘에 잘 말려 드디어 학교로 가져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 보였을 때 쏟아질 찬사에 아침부터 가슴이 뛰고 있었다. 마침내 조회시간, 간단하게 출석을 체크하던 중 앞에 있던 친구가 선생님께 자신이 진흙으로 만든 팔뚝만한 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직 내 도마와 칼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선생님께 이미 칭찬을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수업시간에 펼쳐야 할 과제물을 급한 친구가 미리 선생님께 보여드린 것. 선생님은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하고 수업시간에 다시 보자고 하셨지만 나도 서둘러 나의 역작을 보여드리고 칭찬 받고 싶었다. 그래서 조회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시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도 도마와 칼을(순간 딸꾹질이 나와) 깔을 만들어 왔어요.”라고.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뒤돌아서며 누가 자기에게 “깔보”라했는지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건대 나를 포함해 그 교실에 있던 10여명의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깔보란 말의 뜻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도마와 칼을 내보이며 선생님에게 딸꾹질이 나와 발음이 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던 선생님의 생각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벌을 받았다. 수업 시작할 때까지 교단 옆에 무릎 꿇고 손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내게 잘못을 인정하느냐고 물어 그런 적이 없다고, 깔보란 말을 모른다고 딸꾹질 때문이었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서운 눈초리와 또 다른 벌이었다. 이번엔 교실 밖 창문 아래 가서 무릎 꿇고 손드는 것. 나는 거의 오전 내내 벽에 기대 그러고 있었는데 5월의 따스한 날씨가 나를 졸리게도 했지만 억울함에 계속 눈물이 났었다. 그런데 그때 눈물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이 따로 있었다. 바로 아카시아 꽃 향기였다. 처음엔 코끝에 스치는 달콤한 향이 좋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향은 점점 짙게 느껴졌고 결국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났지만 그 억울함보다 아카시아 꽃 향 때문에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다행히 쓰러지기 직전 선생님은 나를 토요일이면 예배를 드리는 강당으로 불렀다. 본격적인 고문(?)의 시작이었다. 긴 의자 옆에 나란히 앉아 선생님은 짧고 단단한 몽둥이로 내 허벅지를 살살치며 실토하라고 구슬렸다. 얼마동안 나는 상황을 다시 설명하려 애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선생님에겐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고 진실도 원하지 않으며 다만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만 내게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결국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었다. “네 제가 깔보라고 했어요". 그 순간 밝아지는 선생님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하며 내게 교실로 돌아가라고 허락하고 더 이상의 징벌은 없었다. 강당을 나오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마침 작은 동전하나가 쥐어졌다. 그것으로 강당에서 교실까지 벽에다 긴 선을 그으며 천천히 걸었고 새겨지는 자국을 보면서 부조리함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선생님이 보시고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더욱 강하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와인 전문가 되어 나는 그 때의 기억을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다시 떠올리곤 한다.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향은 잘 익은 샤르도네나 세미용 품종에서 자주 느낄 수 있고 좀 더 달콤함은 소테른 와인이나 late-harvested 포도로 만든 와인에서 응축된 향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것은 향이 너무 진해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지금 강원도 양양의 내 작업실이 있는 내곡리에도 어린시절 기억을 느끼곤한다. 5월에 내곡리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만난 진한 아카시아 향은 걷는 내내 어린 시절 머리가 지끈거리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그리곤 이런 생각도 들게 한다. 그 때 내가 좀 더 벌을 받는 한이 있었더라도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항거해야 했을까? 그것이 올바른 것이었을까? 그때의 그런 결정 때문이었을까 나는 불의에 맞서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다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  나 스스로와 고독하게 경쟁하며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 끝까지 항거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것이 좋은지는 내가 가 보지 않은 길이니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와인을 즐기며 사는 지금의 모습에 어떤 후회가 들지는 않는다. 그런대로 봐줄만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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