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Once Upon A Time in YangYang.....
Once Upon A Time in YangYang..... 2019-10-10





지난 주말 지인이 양양을 방문했다. 이 계절이 가기전에 가을 송이와 와인을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물론 지인은 짧은 여행이지만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생각했을수도.... 무엇이든 철처하게 사전 준비를 해야하는 지인은 그 꼼꼼함으로 이곳을 방문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준비했다. 고기의 부위를 정하고 내가 “와인은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본인 셀러의 와인 몇 개를 사진으로 보내 왔다. 그 중 송이와 어울릴 것 같은 세 번째 와인이 내 마음에 들었다.


지인은 정오가 조금 넘어 우리집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고기와 와인을 내 놓고 얼마 전 동구권과 터키를 여행하고 오면서 사온 과자 한 상자를 디저트라며 내놓았다. 사실 지인과는 알고 지낸지 20년 정도가 되지만 나이가들면서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이런 변화에 대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인 면이 많아졌다고 했지만 나는 세월이 지인을 좀더 섬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실제로 요리엔 전혀 관심이 없던 지인은 이제부터 요리를 좀 배워보려고 한다니.....


오후 3시가 넘어 우리는 낙산 비치의 소나무 숲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앞에는 흰 파도의 작은 물방울들이 바람에 흩날려 옅은 안개처럼 해변을 감쌌고, 뒤엔 소나무 숲이, 그리고 바로 앞 모래 사장엔 어린 시절을 연상케하는 그네가 보였고 그 사이로 멀리 한 여인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나는 준비해간 로제 샴페인(Marc Hebrart Brut Rose, premier cru)과 샴페인 잔 두 개를 꺼내 놓고 함께 먹을 살라미와 치즈도 조금 썰어 놓았다. 난 이 샴페인을 좋아한다. 보통 로제 샴페인들이 자신들의 개성이 강하거나 음용 적기가 아니면 감동이 적은데 이 로제는 맛의 균형을 아주 잘 잡아냈고 섬세함도 일품이다. 중요 샴페인 지역중 하나인 발레 드 라 마른에 위치한 마레 쉬르 아이(Mareuil sur AY)라는 일등급 마을에서 생산되는 Chardonnay 50%와 Pinot Noir 43% 그리고 이 곳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 일명 마레이 루즈(Mareuil Rouge)를 7%섞어 만든다. 바로 이 레드 와인 덕분에 로제 맛의 품격이 미식적으로 높은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 본다. 어쨌든 철지난 바닷가에서 두 남자가 샴페인을 마시는 모습이 조금은 낮설 수 있지만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인물은 없고 샴페인과 잔이 들어 있는 사진... 송이와 와인을 먹기 전 아페리티프로 샴페인을 마셨는데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한 병을 모두 비웠다.


송이 파티는 6시가 조금 넘어 시작했다. 본래 계획은 서울에 아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하고 싶었는데 모두 시간이 나질 않아 결국 지인과 단둘이서 즐기게 되었다. 우선 지인이 둘이 먹고도 넘칠 만큼의 양양 송이를 손질했다. 지인이 들고 온 와인은 스페인 최고의 와이너리, 베가 시실리아(Vega-Sicilia)에서 만드는 발부에나(Valbuena.5), 2012년이었다. 보통 이 지역의 전통 품종인 템프라니오가 75% 정도와 멀롯, 말벡을 섞어 만드는데 2012년은 템프라니오 100%로 만든 와인이다. 내 경험으로 템프라니오는 8년 정도는 숙성해야 마시기에 편하지만 지인의 와인에선 적당한 흙냄새가 동반된 템프라니오 품종이 송이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였는데 오픈해 보니 아직 영했지만 생각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좀 더 열린 맛을 느끼려면 2년 정도 더 숙성 후 마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향은 좋았고 입안 전체에서 느껴지는 밀도도 좋았다.


둘이었지만 레드 와인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 이 와인을 마시기 전 좀 더 가벼운 와인 한 병을 오픈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Torre Fornello 와이너리에서 만든 Diacono Gerardo 1028, Gutturnio Riserva. 빈티지는 2009년으로 포도 품종은 바르베라 55%, 크로아티나(Croatina)45%를 섞어 만든 와인이다. 작년에 이탈리아 시음회에 갔다가 시음하게 되었는데 올빈을 좋아하는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겼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는지 한 병을 선물로 받았었는데 일 년 만에 셀라에서 꺼내게 되었다. 그 당시 맛을 기억하면 크로아티나라는 품종의 특징에 대해 잘 몰랐지만 2009빈티지가 송이와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오픈해 보니 그사이 와인의 맛이 많이 진전되어 있었다.


드디어 향긋한 솔 향을 가득 품은 양양 송이와 치마 살 한 점이 같이 올라가면서 큰 즐거움이 시작되었다. 첫 와인에서 약간 오래된 와인에서 나는 물에 젖은 짚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적당한 산미와 송이의 맛을 덮지 않을 만큼의 숙성된 맛이 부담감이 없었다. 지인은 오래전 위 수술을 했기 때문에 많은 양을 먹지 않고 남을 위해 구워주는 봉사를 좋아한다. 그 옆에 내가 있으니 나로서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구워주면 먹고 먹으면 다시 구워주고 한참을 먹어도 고기와 송이는 줄어들 줄 몰랐고 주방엔 아직 자르지 않은 송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말 둘만이 보내기는 아쉬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두병의 레드 와인과 송이 한 접시를 모두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 쉴 때 마다 송이 냄새가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아껴두었던 백차를 마시니 입안이 개운하게 느껴졌다. 양양 시장에서 장날 사온 황금 배도 한 조각 먹으니 대 만족이었다. 지인과 나는 한잔 더하기위해 셀라에서 피노 한 병을 들고 호텔로 갔다. 밤 해변이 보이는 호텔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 기억나는 것이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 서울이나 양양에서 번갈아 보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지인과 나는 12시경 다시 만나 북어 해장국을 시원하게 한 그릇하고 지인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자리로.... 


떠나는 지인의 차 트렁크엔 양양 송이 두 박스와, 능이버섯 한 박스 그리고 해장에 좋은 용대리 황태와 내가 산에서 주은 밤 한 봉지가 실려 있었다.

댓글 수정

Password

수정 취소

/ byte

댓글 입력

Name Password 관리자답변보기

확인

/ byte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