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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양양의 장날 풍경
양양의 장날 풍경 2019-11-12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장이서는 날을 꼭 챙기게 되었다. 별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곳이라 5일에 한번 서는 전통 장에 가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모습과 그들이 가져온 지역 상품이나 특산품등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장은 4와 9자가 들어간 날에 열리는데 한 달에 여섯 번 정도 된다. 그동안 장을 보면서 많은 풍경과 접하게 되었다. 10개월 정도 지나니 그들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올 1월 장터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 “어처구니 있는 맛있는 맷돌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푸드 손수레가 있었다. 30대 후반의 주인은 전통 맷돌로 만들 수 있는 음식 몇 개를 메뉴에 올리고 손님들을 받았다. 맷돌 원두커피, 맷돌 검은 콩 두유, 맷돌 녹두전 그리고 맷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십전 대보차도 있었다.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지역민은 짙은 눈썹 문신의 소유자. 언제나 트롯 테이프를 팔고 있는 여성스런 아저씨다. 꽁지머리에 얼굴엔 분을 칠하고 짙은 눈썹을 문신으로 만든 분, 그냥 서 있을 때도 트로트 음악에 맞춰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데 신고 있는 앞이 뾰족한 구두가 스텝과 더불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매번한다. 나는 이분을 처음 뵙고 영화관에서 막 나온 엘비스 프레슬리인줄 착각했다. 문신과 머리 스타일 때문에 약간은 부자연스럽지만 코믹한 분위기가 느껴져 좋았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끔 재미있는 대화들을 엿들을 수 있다. 통로에 좌판을 깐 할머니가 손님에게 붉은 콩 한 사발을 팔면서 “속이 아주 야물 지게 꽉 찼어”하신다.
누님께도 한번 사다드렸던 도토리묵  파는 아줌마는 "오늘 장사 좀 되네. 보통 토요일 사람들이 많은데 설 직후라 별로 없을 줄 알고 물건을 조금 가져왔더니...." 
동치미 사느라 매번 들리는 반찬 아줌마는 벌써 두 양동이 다 팔고 손님들 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바로 이어지는 골목의 떡집 앞, “형님 이거 잡수셔” 지나가던  아저씨가 담배 태우며 벌써 한잔 걸친 아저씨에게 떡 한 봉 다리 건네자 슬쩍 펴보며 “아니 뭘 이런 걸 다....”
또 다른 골목에선 “에이 나쁜 노인네, 두 개나 처먹고 사지는 않고...” 돌미역 파는 할머니의 푸념과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건조한 생선 좌판 앞에서 서성이며 생선 이름을 묻자 “여기선 검은 놀랭이라고 불러요. 이게 굵은 거니까 가져가요. 좀 전에 노인네가 산다고 해서 담아두었는데 그냥 갔어.” 집에 와서 펼쳐보니 그놈이 그놈 같았다.
매번 들리는 정선의 버섯 아저씨는 동생이 평창에서 버섯 농장을 하고 형인 아저씨는 정선에서 버섯 가게를 한단다. 아저씨는 표고, 뽕 버섯, 느타리 버섯, 송이 버섯, 능이 버섯 등등 다양하게 팔고 있는데 양양에선 장날에만 상을 펼친다. 나는 이곳에서 늘 버섯을 사는데 양이 많고 싱싱하며 아저씨 인상이 좋아서다. 방문 할 때마다 인사를 했더니 이제는 내 얼굴을 알아보시고 덤을 좀 더 주신다. 

장터의 튀김집과 꽈배기, 어묵 파는 집은 어디나 만원이다. 서서 먹는 곳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꼬치하나에 500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 통에 둘러서서 정신없이 먹어 댄다. 허기가 느껴 질만한 시간이니....


각종 너트를 직접 볶아 파는 집과 생선 포 파는 집은 사람들이 맛보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니 한사람씩 모두 맛보면 그 양이 엄청날 것. 맛보고 사면 좋은데 안사고 그냥가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싱싱한 고기를 직접 잡아와 파는 사람도 있는데 장 한편에서 “단돈 만원에 도치 두 마리”라고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외치지만 돌아다녀보면 도치는 모두 마리당 5천원이다.
지나가던 손님이 졸고계신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게 뭔가요” 잠이 덜깬 할머니가 눈을 지그시 뜨며 손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물건을 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인지 퉁명스럽게 얘기한다. “그걸 물어보려고 잠자는 사람을 깨워요” 그 다음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당당합니까?” 의외의 말이었다. 손님이 물건 파는 할머니에게 어떤 물건인지 궁금해서 물은 건데 당당하냐는 말이 가능한 것인지... 양양 할머니들이 거친 것은 사실 같았다.  

 

가을에 장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 특산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양양 송이다. 특별히 9월 중순부터 전국에 송이들이 양양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말쯤엔 송이 축제가 남대천 둔치와 시장에서 열려 최고조를 이룬다. 시장에선 지역 주민들이 산에 갔다가 획득한 송이들도 볼 수 있는데 할머니들은 이를 참 송이라며 남편이 직접 산에서 따온 것이라 인증까지 해준다. 하지만 가격은 무척 비싼 편이다. 송이와 더불어 능이도 이곳 산림조합에서 경매를 통해 입찰 받을 수 있지만 개별적으로 몇 송이씩 따와 장터에 펼쳐 놓고 팔기도 한다. 예부터 송이나 능이 나는 곳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가족들에게만 은밀하게 대를 이어 전해진다고 했다. 그만큼 귀하고 은밀한 것이니.... 이 외에도 검은 색의 곰버섯, 야생 표교버섯, 엷은 상아색의 노루 궁둥이 버섯들이 보인다. 더덕은 거의 사시사철 볼 수 있지만 도라지는 계절을 탄다. 요즘은 밤이 풍성하게 나온다. 이 지역은 참나무가 귀한대신 밤나무가 소나무 숲 사이사이에 있으며 집주변엔 과실수로 감나무들이 한두 그루 꼭 있는 편이다. 또한 주변에 과수 농장들이 많아 사과, 배들은 싱싱한 것들로 구할 수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지루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일이 마늘 까기, 밤 까기, 파 다듬기 등 다양하다. 점심시간엔 어디서 시켰는지 국수나 자장면 된장찌개 등을 드신다. 반년 넘게 다니다보니 이제는 어느 할머니가 출석했고 결근 했는지 알 수도 있고 어떤 분이 어떤 종류의 상품들을 갖고 나오시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가끔은 개성이 강한 할머니들도 뵐 수 있고 수줍음 많은 아주머니, 시간만 나면 주머니의 돈을 세시는 분, 그리고 많이 주무시는 분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반면에 시장답게 거친 말싸움을 하는 아주머니들도 있는데 이들은 극소수이다.
싱싱한 야채를 파는 집, 물 좋은 생선을 싸게 파는 집, 아침부터 파장까지 더덕 손질만 하시는 분, 매번 한 다라씩 떡을 해오지만 오후 초반이 되면 모두 동이 나는 떡 할머니....나는 특히 청배를 좋아하는데 과수원을 하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에게서만 그 집에서 재배하는 황금 배를 살 수 있다. 매번 사다보니 단골이 되었고 갈 때마다 황금 배를 사면 다른 배와 감 등을 덤으로 주신다. 아주 기분 좋은 거래다.


이 모든 모습이 있는 장터, 나는 스쳐지나가면서 그들의 다양한 삶을 바라본다. 내 마음속에 있는 장터의 풍경과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리얼, 요새 모두 좋아하는 꾸미지 않은 리얼 그 자체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 것과 그들의 참 모습과는 별 연관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부족해 보여도 또한 조금 어색함이 느껴져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그들 속에 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화된다는 것, 내게 드는 두 가지 생각, 과연 완전하게 동화될 수 있을까?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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