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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일어나는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초란 한개
초란 한개 2021-05-27


벌써 이곳에 정착한지도 2년하고 반이 넘어간다. 이 기간 동안 한 번도 이곳에 정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다. 어디로 다시 떠나기 위한 경유지로 생각했을 뿐... 

하지만 작은 추억들이 쌓이면서 정은 들어가고 있다.


초창기 산책길에 있던 닭 기르는 농가에서 신선한 계란을 구입해 먹으면서 참 즐거웠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0개의 계란을 구입하면 농부의 아버지는 늘 호주머니에서

 초란 하나를 꺼내 덤으로 주셨다. 작고 창백한 모습의 어르신은 초란 하나로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어쩌다 어르신이 안계서서 농부에게 직접 구입할 때면 초란은 없었다. 

초란은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는데 이것하나 더 얻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곤 했다. 그 때문인지 계란은 꼭 어르신에게 전화를 드리고 사러 갔었다.


그런데 작년 말 어느 날부터 어르신이 보이질 않아 농부에게 물었더니 겨울엔 이곳이 추워서 근처 아파트에서 생활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산책길에 농부를 다시 만났는데 
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오는 중이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인데 알고 지낸지 2년도 안되어 돌아 가셨다. 이제 초란의 추억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거란 아쉬움 때문인지 그날의 산책길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졌었다.


나는 물론 초란을 덤으로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계란을 구입하고 있다. 하나의 에누리도 없는 10개 정량으로... 사실 농부에게 어르신의 초란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고 그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냈었는지 알려주고 싶긴 했다. 예를 들면 이곳 계란이 마트 보다는 좀 비싸지만 초란의 정 때문에 일부러 마트에서는 계란을 구입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꼭 농부의 계란을 사야 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우연히 산책하다 계란이 보이면 구입하는 정도. 더 이상 이 곳 계란을 구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실망감이 없는데...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아쉬움이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농가주변 새로운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농부의 계란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주말이면 품절 상태가 되니 말이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경제의 법칙이 적용된다.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도 많아져야하지만 공급은 한정되어 있고 수요가 급증하니 농부는 아쉬운 것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사 모두 그러하듯 이런 봄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몇 일전 주말에 자전거로 산책하다 농부의 계란 가계를 지나게 되었다. 셀프 가계라 계란을 작은 냉장고 속에 보관하는데 계란이 세 판이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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